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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서랍을 정리하다

대학시절 작업하면서 남긴 흔적들을 발견했다. 대학시절 팀플 과제로 제작한 영상의 제출용 CD, 그 영상의 촬영용 원본 8mm 테이프. 테이프엔 가제가 쓰여있고, CD에는 제목이 대충 휘갈겨 쓴 듯 적혀 있었다.
"서로 사맛디 아니할 새"
8mm야 학교에 가지않고선 볼 방법이 없으니 어찌어찌 CD에 들을 파일 백업한걸 찾아서 보니, 복학생 아재들의 반 협박에 못이긴 새내기 후배들이 어색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운드는 제대로 컨트롤도 못해서 공간감이 엄청 느껴지는 동굴소리가 났고, 화면 위로 살짝살짝 붐마이크의 머리가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아... 이런 조잡한 영상을 만든답시고 우리는 그리도 고민하고 갈등을 겪고 거기서 미래를 꿈꾸었었나 싶었다.

백업한 또 다른 영상에는 타과수업에서 조별 프로젝트의 과정과 후기를 남기라는 추가 과제에 영상 작업한게 튀어나왔다. 다른 이들은 PPT로 할 때 조장이 나에게 촬영과 편집지시를 맡겼다. 5분 남짓 영상에서 나는 무슨 의도로 그 장면과 사진을 넣었는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어쩌자고 인중에 대놓고 클로즈업을 시도했는지는... 지금이라도 카톡에 미안하다고 할까보다.

마지막으로 친구 과제 돕는답시고 만들던 영상의 프로잭트 파일이 튀어나왔다. 거기에는 화면이 주인공을 잡는 신이 아니라면 계속 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메이킹 필름마저도 모든 장면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그 사람이 등장했다. 그만큼 그때는 내 시선이 담을 수 있던 세상에 그 사람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전에 친구가 결국 남는건 사진이라고 종종 이야기했었다. 나 스스로가 피사체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다보니 이 모든 영상에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늘 나는 카메라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있었다. 그 때의 내모습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저 그 화면을 통해 내가 그때 어떤 느낌이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추측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러다 서랍을 다 정리할 때 즈음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대학교 1학년때 친구가 찍어준  내 사진이었다. 가을날 은행나무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찍어준 그 사진에 나는 표정도 어색하고 자세도 어색했지만 그래도 찍어준 친구의 우정이 느껴지는 그런 사진이었다. 그러고보니 내 인생에 몇 없는 내 사진의 거의 대부분을 이 친구가 찍어줬다. 이 상하게 이 친구가 찍어준 사진에서만 나는 편한 인상이나 자세가 나온다. 어쩌면 그래서 이 친구를 만날 때 나도 모르게 사진 한 장만 부탁한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어색하지만 책상 한 켠 스탠드에 이 것들을 꺼내서 장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울때 꺼내보는 옛날 사진처럼 이것들로 나도 힘들때 보면서 힘을 얻고, 그때 만난 사람들을 잊지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며 살아야지 싶었다.
이래서 새벽은 잡념 때문에 위험한것 같다. 그냥 자야된다. 후후...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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