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가을의 냄새

8월 말이었나? 내가 참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많이 덥죠? 근데, 이제 곧 9월 오고 그러면 쌀쌀해질거에요. 건강 관리 잘해요. 자연은 거짓말 하지 않아요."
정말로 9월이 되자 아침 저녁으로 열대야는 잊은 듯이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은 여름의 냄새가 있다. 풀잎과 약간은 비릿한듯한 비의 냄새. 또는 한낮의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땅의 달궈진듯한 흙내음.
그런 것들이 가시고 바람 너머로 느껴지는 가을의 냄새가 느껴질 때즘 반팔을 슬슬 정리하고 야상의 내피를 떼고, 가디건을 꺼내어 옷장 한 쪽에 걸어둔다.
얼마 전 집에 돌아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데 익숙한 하지만 그리 반갑지 않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는 지금이 9월인 것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은행의 냄새였다.
자연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정말 그들은 성실하게 때를 기다리고 맞이하며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낙엽과 열매가 흙이 되어가며 내는 냄새가,  높고 푸른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상쾌하고 시원한 냄새가 돌아왔다. 반갑고 기쁘다.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쓸게해도, 은행 냄새가 조금은 코를 불편하게 해도, 가을의 냄새가 나는 이 무렵이 일년 중 제일 좋다.
하지만 가을도 봄도 그렇듯 여름과 겨울에 비하면 짧게 순간처럼 지나갈 것이다. 가을 냄새에 심취할 무렵 아마 보지도 못한 첫 눈소식이 들려올 것이고, 은행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폐부를 찌를듯한 차가운 바람의 냄새가 입김과 뒤섞일 것이다.
짧게 느껴지는 만큼 그 순간들을 조금 더 길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이번 가을에는 해볼까한다.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2016.09.19. 저녁.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년여 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0) 2017.01.20
16.10.11.  (0) 2016.10.11
봄길 - 정호승  (0) 2016.07.11
서랍을 정리하다  (0) 2016.06.24
지름신 강림.  (0) 2016.05.21